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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터-역피라미드 형태 충격이네요

판에 보면 심심치않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네 어쩌네 하는 말들을

쉽게 볼 수 있죠.

그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이었으며 프리메이슨에 의해 살해되었다... 뭐 이런 말도 있고..

그런데 웹서핑중 우연히 노무현 대통령의 묘지 사진을 모고 아연실색했습니다.

긴말 필요없이 아래 사진,.

                              [1]

                              [3]

이게 먼가요?

프리메이슨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이라도 위의 두 그림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퍼온 글인데, 위 그림들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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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마을 사자바위 앞에 조성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
보자마자 놀란 것은 저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완벽한 형태의 '미완성 피라미드'입니다.
이것은 99.999999% 엘리트의 직접적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태껏 한국에 존재하는 어떤 묘지 공원, 묘가 저런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이것은 정말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일까요? 다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봉화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지구조의 상생질서 관찰과 개선방향에 대한 고찰


장례와 묘지와 관련된 전문 업체인 의전법인 '상장풍'의 블로그의 자료입니다. 그 중 내용을 보겠습니다.

... 그러던 어느날 대통령님의 서거 1주기에 맞추어 정비한 묘역을 바라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눈에 들어온 대통령님의 묘지는 정삼각의 상생구조가 아니라 역삼각의 상극구조로 보였기 때문이었다...(중략)... 저번 참배길에 들리지 못했던 사자바위까지 올라가 주변산세와 묘지구조를 살펴보니 역시나 참담한 형상을 한 대통령님의 역삼각묘지가 조상줄을 배격한체 신하산을 향해 조응하고 있었다 왜 이런 형상으로 묘지구조를 조성해야 했을지 관찰해 보았지만 묘터의 생김새를 핑계삼을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여기서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노무현 대통령의 묘는 풍수지리에 맞게 조성되지 않았다는 점
2. 묘를 만든 터는 원래 그런 모양이었다는 것

한국의 지도적 인사, 특히 대통령이 서거했을 경우 국가의 가장 정통적인 방식에 의해 그 시신이 모셔집니다. 당연히 풍수지리가 동원되고, 그것은 풍수지리가 맞아서라기 보다는 사회통념적, 관습적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장례절차라야 국가의 위신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피라미드라... 그것도 역피라미드입니다. 한국 역대 왕, 지도자의 묘 계보상 전대미문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시안이 들어갈 맨 윗쪽 부분도 잘 재현했군요. 그럼 실제 묘가 위치한 곳은 터 중 어느 곳에 자리잡고 있을까요? 전 정말로 혹시나 하고 위를 쳐다봤지만 역시나 피라미드 상부가 아닌 최하단이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노대통령은 선거부터 재임 기간 내내 엘리트들의 접촉에서 상당히 껄끄러운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삼변회의 정몽준이 연합 가능성을 보였지만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던 것으로 봐서 그 때부터 이미 작업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은 엘리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줬습니다.
'남북관계'만 빼고.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 깽판쳐도 좋다' 아주 유명한 말이고 아직도 회자되는 말이죠. 어떤 면에선 천박하기 그지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노무현은 이걸로 승부를 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엘리트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노명박'이라는 말이 떠돌기 훨씬 전 전 이미 노무현은 서민 편이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죠.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에, 제도 개혁을 하면 다 재벌편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라면? 무슨 방법이 안나오는 겁니다. 한국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 온 나라입니다. '생존'이 한국인의 화두고 모든 추진력의 배후가 되는 것이죠. 그것을 놓칠 경우 6.25, 식민통치라는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아마 그랬을 겁니다. 미국에 가서 북 미사일이 자위용이라고. 부시는 자기 OK목장에 노무현은 부르지도 않았죠. 그가 던진 말 한마디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전세계 외교가에 엄청난 쇼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떤 면에선, 엘리트들이 근사한 옷을 차려입고 파티를 하는데 거기다 오물을 던져놓고 온 정도의 쇼크였을 것입니다. 권위가 완전히 손상된 셈인데, 그 때부터 이미 손봐주기로 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 피라미드 무덤은 상당히 상징적입니다. 노무현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까불어 봐도 너는 우리 질서의,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의 부리는 하인에 불과하다. 노무현이 하인이었다는 것을 다들 잘 봐두고 기억하라는 살아있는 표식인 것입니다. 다른 어떤 지도자의 사후에도 저런 증오감을 보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아주 강하게 느껴집니다.

예전 부엉이 바위 관련해서도 비록 추측에 불과하지만 '몰렉'이라는 부엉이 신상 모양을 보여드린 적이 있지요. 그 때 가장 큰 의문은 노무현이 비록 이명박의 대칭을 형성하고, (그들이 계획하던) 남북긴장구도 형성에 방해가 되고, 또 확실한 정치적 걸림돌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 했습니다. 그들이 '이명박의 정치적 압박' 이라는 그럴싸한 구실로 타살을 자살로 위장하면서까지 그를 죽여야 했는가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결론을 이번에 얻은 것은 '증오감' 그것이었습니다. 결국 조중동이, 소위 기득권 세력이 그에게 보인 증오감은 연장해 보면 엘리트들의 증오감에 연결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차가운 이성과 계획 속에 움직이는 지배자들의 아주 깊은 곳 어떤 것을 건드린 것 같은 그런 이유에서 나오는 감정으로 느껴집니다.
정치 참 어렵군요.

작성: 아고라 켄지 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4411675)

출처: 노무현 암살 의혹 - 노무현 전대통령 묘에 담긴 상징주의 http://blog.daum.net/jp1738/68[5]

[노무현 묘 - 승효상]

“스스로를 추방한 노무현의 삶 … 묘에 그걸 담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1.05.24 01:24 / 수정 2011.05.24 09:05

 봉하마을 묘역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운명이다.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서를 남겼다. 2009년 5월 23일 서거 직후 구성된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는 묘역 조성에 고인의 유지(遺旨)를 어떻게 반영할지 고심을 거듭했다. 위원회에 참여해 묘역 전체 공간디자인을 맡았던 건축가 승효상(59·이로재 대표)씨를 지난 10일 서울 동숭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너럭바위 묘. 출처=『노무현의 무덤-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연합뉴스]
-어떻게 묘역 설계를 맡게 됐나.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각별했나.

“지지는 했지만 개인적 인연은 거의 없었다. 광화문광장 복원 문제 등으로 두어 차례 뵙고 설명을 드린 정도다. 서거 직후 유홍준(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씨가 전화해 ‘작은 비석’을 만드는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장례식(영결식·5월 29일) 전날 저녁 내 사무실에서 첫 위원회가 열렸다. 정기용(건축가·올해 3월 11일 타계) 선생도 위원회에 참여했는데, 그는 이미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처지라 묘역까지 맡기를 꺼렸다. 자연스럽게 내가 설계하게 됐다.”

-묘역 면적이 약 1060평(3505.61㎡)이다. 유서는 ‘아주 작은 비석’이라고 했다. 일부에서 너무 크다거나 고인의 뜻에 어긋난다는 말이 나왔다.

“묘 자체는 불과 5평(약 16㎡)이다. 나머지는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한 공간이다. 대통령은 ‘아주 작은 비석 하나’라고 하셨지만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면 모르되 비석이든 무덤이든 놓이는 한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점을 감안했다. 유홍준 교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표현하더라.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의 묘역 넓이가 얼마인지 아나. 30만 평(약 99만㎡)이다.”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도 의견이 있었을 텐데.

“내가 고민한 것은 규모보다는 ‘형식’이었다. 평지에 박석을 깔고 내후성 강판으로 벽도 세운다니까 유족들도 아주 낯설었을 거다. 전통적 묘를 생각했을 테니까. 권 여사께서 대단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탄했다. 걱정도, 할 말도 많았을 텐데. 권 여사는 공사 중에는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1주기 추모식 때 묘역을 처음 보셨다. 나보고 ‘정말 고맙다’며 만족해하셨다.”

승효상씨가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상해 스케치한 그림. 출처=『노무현의 무덤-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연합뉴스]
 -묘역 조성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추방한 모두를 위한 풍경’을 염두에 뒀다. 노무현의 삶의 방식이 그랬다.”

-스스로를 추방한다? 좀 어렵게 들린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권력과 지성인』이란 책에서 지식인에 대해 정의한 게 있다. ‘지식인인 한,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모험적 용기의 대담성에,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는 자여야 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렇다. 그는 ‘어떻게’보다는 ‘왜’를 따졌던 분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으로서는 대단히 낯선 존재다. 친숙함에 대해 계속 반기를 들고, 스스로 낯설어함으로써 따지고 되묻고, 옳으면 실천하고 아니면 다시 반기를 드는 사람이었다. 친숙해지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스스로를 객관화해야 한다. 노무현이 그랬다. 사실 건축가도 그렇게 돼야 하는데….”

-스스로도 그런 지식인이 되려고 노력하나.

“항상 시각을 달리하려고, 나를 타자화(他者化)·객관화하려고 훈련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지식인상(像)에 대해 물으면 ‘속에 작은 분노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분노거리를 만들어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으니까.”

-묘역에 박석을 깔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데.

“박석에 글을 새겨 깔되 돈을 받고 팔자고 제안했다. 박석 한 개에 5만원씩 받기로 하고 1만 개를 준비했는데 며칠 안 돼 다 팔려 나갔다. 홍보도 안 했는데. 참여하지 못한 분들의 항의가 빗발쳐 5000개를 더 마련했다. 박석 값만으로 공사비의 절반을 충당했으니 나도 꽤 기여한 셈이다.”

-묘역 설계비는 얼마나 받았나.

“무료로 했다. 나중에 권 여사님이 금일봉을 주셔서 정말 감사히 받았다.”

-금일봉은 얼마였나.

“(웃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지금 살아 있는 분들 중에서 사후에 무덤을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

“누구든 부탁해 오면 하겠다. 단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은 빼고.”(그는 그 전직 대통령에 대해 “구태여 이름까지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종합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승효상 대표와 나눈 대화를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코드 리더기를 작동시킨 뒤 화면 중앙 네모 창에 QR코드를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돌아가신 분 중에서는.

“기회만 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하의도에 새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국립묘지와는 진정성이 다를 것이다.”

-건축가로서 상도 많이 받았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영구 소장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가장 걸작으로 자부하는 작품은.

“…없다. 그동안 실수도 많았고 창피하다. 제일 가기 싫은 게 내 작품 준공식이다. 다 허물고 싶을 때도 있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승효상=1952년 부산 출생. 경남고, 서울대 건축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공대에서 공부했다. 김수근(1931~86)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을 익혔다. 양덕성당·경동교회·수졸당 등 많은 작품들로 호평받았고, 파주 출판단지 1단계 조성사업 코디네이터로 활약했다. 현재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 2011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이다.

PS;   판단은 여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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